마음 이야기

문자 너머 의미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지성

일심행 2023. 6. 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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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에는 여러 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우물이라는 일정한 공간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하늘도 그 안에서는 그리 크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 조그만 공간에서 개구리들 대부분이 만족하면서 살았는데,

유독 한 개구리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뛰어 봤지만

이내 떨어지고 말았다.

 

무엇 때문에 그리 뛰느냐는

주위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우물 밖을 나가려고 하였다.

 

그에게는 우물 밖 세상을 보는 것이

삶의 이유였던 것이다.

소원이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던가?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그가 우물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우물 밖의 하늘은

안에서 보는 것과 달리 끝없이 펼쳐져 있고,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멋진 신세계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말문이 막혀 그저 '아!' 하는 탄성 이외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맘껏 즐겼다.

저 넓은 들판에서 힘껏 달려 보고 그러다 지치면 냇가에서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 졸음이 밀려오면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다가 새들의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하였다.

그러다 문득 우물 안에 벗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이 멋진 세계를 느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우물 안으로 돌아와 벗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세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다른 개구리들이 자신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저 넓은 들판이며 시냇물이며 나무들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개구리는 어떻게 하면 저들이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뛰어다녔던 들판이 얼마나 넓은지 벗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내 배의 '두 배' 만큼이나 넓다고 말이다.

그제야 밧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개구리는 왜 '두 배' 라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바로 우물 안에서 가장 큰 숫자가 '2' 였기 때문이다.

즉 개구리는 들판의 실재와는 다르지만 벗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만약 우물 안에서 가장 큰 숫자가 5나 10이었다면 들판의 크기를 다섯 배 혹은 열 배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두 배' 는 들판의 실제 크기가 아니라 벗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동원된 방편이다.

이를 우리는 상징이라고 부른다.

 

우물 밖을 나간 개구리는

그리스도나 붓다와 같이 종교 체험을 한 인물을 비유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물 밖 체험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체험자체가 언어와 사유를 넘은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물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상징이나 은유, 비유 등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것이다.

그것들을 모아놓은 것이 성전이다.

성전에 표현된 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상징 너머에 있는 의미다.

그것을 이해하고 실재의 세계를 체험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문자 자체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 중요하다.

 

붓다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고대 인도라는 특수성에 나온 표현 방식이다.

 

출생 신분을 중시하는 인도인은 사제인 바라문은 머리에서,

왕족인 크샤트리아는 옆구리에서,

평민인 바이샤는 허벅지에서 그리고 천민인 수드라는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하였다.

붓다의 탄생을 기록한 작가는 인도인의 오래된 믿음을 동원해서 그의 신분이 왕족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붓다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고 말하고 '그의 신분이 왕족이다.' 라고 읽을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문자 너머 의미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지성이다.

《불교란 무엇인가/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이일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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